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가 ‘주의해야 할 로펌’(이하 주의 로펌) 지정과 ‘법무법인 업무정지’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위원회는 10명 내외로 구성되며, 법원·법무부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의 참여도 논의 중이다. 서울변회는 변호사 시장의 건전성 제고와 소비자 피해 예방을 내세우지만, 현장에서는 “특정 법무법인을 겨냥한 블랙리스트 제도”라는 반발이 거세다.
서울변회는 지난 7월 24일 보도자료에서 ‘사건 의뢰 시 주의해야 할 법무법인 지정제’ 검토를 공식화했다. 근거로 제시된 규정은 개인 변호사에 대한 정보 제공에 한정돼 있으며, 법무법인 전체를 대상으로 제재적 성격의 정보를 공표하는 체계를 허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서울변회는 이른바 네트워크 로펌을 겨냥해 제도 추진에 속도를 내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회원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그러나 설문 문항은 “네트워크 로펌의 부적절한 업무처리가 변호사 직역의 신뢰를 해치는가”와 같이 부정적 전제를 내포해 응답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근거로 제시된 ‘소비자원 민원통계’ 역시 출처와 산정 방식이 불분명하다. 특정 로펌의 4년간 민원 49건을 문제 삼았지만, 같은 기간 처리한 2만~4만 건을 고려하면 민원율은 0.1% 수준이다. 절대 건수만을 부각한 판단은 공정성과 통계의 기본 원칙을 벗어난다.
문제의 본질은 절차에 있다. 사법기관조차 하나의 사실을 확정하기 위해 수사와 재판, 항소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변호사단체는 종종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고 환불을 요구하는 진정인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인 무죄추정과 적법절차 원리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로펌을 ‘주의 대상’으로 지정하는 행위는 단순한 내부 평가가 아니라 생업과 신용,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실상의 제재다. 이처럼 중대한 조치를 내부 판단만으로 행사하겠다는 제도는 출발선에서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다.
더구나 ‘주의 로펌’의 개념조차 불명확하다. 본래 취지는 ① 대형로펌을 가장하거나 별산제 구조를 숨긴 채 허위 전문영역을 홍보하거나, ② 전관·사무장과 결탁해 사건을 소개받고 소개비를 지급함으로써, ③ 수행비용 부족으로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하는 로펌을 지칭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이미 변호사법상 징계 및 형사처벌 대상이다. 별도의 ‘주의 로펌 지정제’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기존 절차를 우회하는 이중처벌적 낙인제도로 작동할 위험이 크다.
이 제도는 자율규제를 가장했지만 실질은 권한 통제 장치이고, 평가를 표방했지만 본질은 표적 낙인 시스템이다. ‘블랙리스트’의 부정적 경험은 이미 사회 전반에서 확인된 바 있다. 특정 대상을 정해 ‘공정한 평가’라는 이름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구조는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일 뿐이다. 법조단체가 이런 제도를 스스로 운용한다면, 법조의 자율은 곧 내부 정치화와 자기검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서울변회가 표방하는 ‘자율규제’는 권한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율은 권한의 분산과 투명한 견제를 전제한다. 그러나 징계·평가·홍보 기능이 한 기관 내부에 집중되면, 비판적 의견을 내는 변호사나 독립적 로펌은 언제든 불이익 대상이 된다. 이것은 법조의 자율이 아니라 내부 권력의 봉건화다. 정치적 영향력 아래 운영되는 변호사단체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잃는다면, 국민의 신뢰 역시 회복하기 어렵다.
‘불량로펌’ 지정은 명예 문제를 넘어 경제활동과 신용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의뢰인은 불안해하고, 거래처는 계약을 해지하며, 금융·보험기관은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 그 결과 로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소수 인사의 주관적 판단에 맡기는 것은 사실상 법의 이름을 빌린 집단적 제재에 가깝다.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누가, 어떤 증거로, 어떤 절차로’ 판단할 것인가. 이 세 가지에 대해 명확하고 투명하며 법률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법조의 자율은 권력의 자율이 아니라 법과 절차에 복종하는 자율이어야 한다. 그것이 법조인의 양심이며, 자유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다.
열린법조시민참여연합 조영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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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량로펌 지정제, 절차 없는 정의는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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